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코로나 백신의 소식이 들려온다. 정책적인 잘잘못을 떠나서 백신으로 이 상황이 어서 빨리 종식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일단 접종이 시작되면, 노인들에게 먼저 차례가 오겠지만, 실제 안심하고 길을 나설 때가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경제적으로 많은 소상공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으며, 계층적으로 보면, 노인들은 이번 코로나의 최대피해자다. 국가적 환란과 재앙이 닥치면, 언제나 노년층이 맨 먼저 피해를 당해 왔던 것이 인류의 숙명이지만, 이렇게 발전된 현대의 문명에서도, 역병의 창궐로 인해 노인들만의 사망률이 극도로 높아진다는 것은 그간 노인들이 이루고 지켜낸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한 생각도 든다.
노인들의 피해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상당기간 심한 후유증을 몰고 올 것이다. 마치 코로나 환자가 회복된 후에도 후각 미각의 상실로 인해 상당기간 고통 받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전만해도 고령사회로 들어가는 빠른 진입속도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가 있었지만, 장수가 미덕이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이를 위한 제도들이 보완되고 있었다. 외로움 그리고 돌봄을 받기 위해 집단 시설의 요양원과 노인병원으로 들어가지만, 이제 이곳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온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코로나가 노인과 관련된 모든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노인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외로움이다. 고독사로 대변되는 노인의 외로움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이는 많은 연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 노인의 장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데, 코로나가 인해 고립되고, 교류하지 못하는 생활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 이후에도 이런 고립과 외로움이 줄어들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감염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 알게 된 인류는 아마도 세계 곳곳의 작은 움직임에도 나비효과가 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계층이 노인일 것이다. 외로움을 덜어줄 집단 시설의 잦은 폐쇄와 통제는 반복될 것이고 이로 인해 외로움과 고립감은 증가할 것이다.
역세권에 가까이 거주하는 건강한 노인들의 경우에는 생존을 위한 물건 구매도 상대적으로 용이하겠지만, 조금 먼 곳에 거주하고, 온라인 쇼핑도 어려운 노인의 경우에는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변할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2~3년새 65세를 넘는 노인층이 된다. 이들을 포함한 지금의 60~70대의 건강한 노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이들은 조국의 현대화를 위해 젊음을 바쳤으며, 지금의 조국을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신체건강하며, 정신도 맑다. 컴퓨터와 디지털기기가 낮 설지 않으며, 디지털 핸디캡이 낮아서 지금과 같은 언택트 생활에서도 온라인쇼핑도 가능한 세대이기도 하다.
어쩌면 노인의 계층도 다변화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이로만 구분하거나, 아프거나 또는 건강으로만 노인의 계층을 구분하는 방식은 구태의연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딱히 효율적인 구분의 방식이 떠오르지 않지만, 건강 정도나 디지털적응도 등 좀 다른 관점으로 노인들을 구분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런 세분화는 일반 회사들에겐 익숙한데, 고객세분화, 즉,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이라고 부른다. 마케팅의 근본인 시장고객을 세분화하고 핵심타겟고객을 찾는 업무를 말하는데,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모든 회사는 이 업무를 한다. 이같이 세분화된 노인계층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니즈가 달라질 수 있다. 건강한 80대노인과 건강하지 못한 60대후반 노인의 필요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요즘의 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집을 장만하고, 적당한 절세요령과 시기 등을 고려해서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해졌다. 더욱 복잡해지는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사기도, 팔기도, 상속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보험만 해도 그렇다 내가 갖고 있는 실손 보험이 좋은 건지, 지병이 있어도 가능하다던데 진짜 잘 보장이 되는 상품인지 잘 모르겠다. 물어보고 싶은데, 찾아가면 덜컥 가입을 하라고 할 거 같은 부담 때문에 편하게 물어보기도 그렇다 오죽하면 TV에서 보험의 보장내용을 해석해주는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로, 보험이 복잡해지고 있다.
건강과 관련된 내용도 복잡하다. 몸의 어디가 아플 땐 어느 과를 찾아가면 되는지, 내 나이면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의 혜택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공단에서 건강검진을 해 준다고 하는데 충분한 건지 등의 제도와 관련된 것부터, 수많은 건강식품이 선전되고 있는데, 이런 거 먹어도 되는지, 내 몸의 상태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요즈음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제품은 뭐가 있는지, 또 나에게 맞는 건강한 식단은 어떤 것 인지 등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보기 묘한 것이라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핀잔이나 주고 해서 엄두가 안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정의학과가 생각난다. 1979년인가 서울의대에 처음 생겼다고 하는 가정의학과는 당시 환자와 환자가족에게까지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일종의 주치의 제도의 일환으로 생겼다고 한다. 이제는 초기 진료의 효과적인 접점으로서 가정의학과가 정말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병증을 느끼고 내방하는 환자의 50%이상은 대부분 가정의학과 내에서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고 나머지 50%는 타과로 이전되어 전문진료를 받는다고 한다. 의사의 판단으로 간단한 병인지, 또는 보다 면밀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초기에 진단하는 것은 환자에게나 또 의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가정의학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능이 노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누군가가 노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층별로 그들이 필요한 니즈를 파악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해드리고, 보다 전문적인 영역의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트랜스퍼 하거나 소개해드리는 그런 역할의 조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장수학자이신, 전 서울의대 교수이자 전남대 석좌교수이며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장이신 박상철교수께서 주장하신 ‘웰 에이징(Well Aging)’의 개념이 생각난다. 당당하고 행복한 장수를 위해 식생활과 운동처방 등 다양한 매뉴얼을 제시했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해, 이를 잘 도와드릴 수 있는 전문인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Well Aging Planner 또는 Well Aging Manager로서 노인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이들의 니즈를 해결하는 일종의 Facilitator, 조력자의 개념을 말한다.
그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노인과 관련된 의료영역부터 국가의 복지 정책 및 이와 관련된 정보, 부동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세법, 보험 그리고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 영역까지 그 분야는 방대하다. 가정의학과에서 일차 진료를 하고 판단한 후, 필요하면, 다른 전문 의학과로 트랜스퍼 하는 것과 같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연결해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이런 ‘웰 에이징매니저(가칭)’가 아무 준비 없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의료와 복지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하고, 기타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정부기관과 일반 기업을 포함한 사회전반이 컨센선스가 필요하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노인과 관련된 신규사업이나 업무를 위해 필요인력을 구인 할 경우, 이왕이면, 이런 교육이나 웰 에이징 매니저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우선 구인하고 업무를 맡겨야 한다. 또는 기존의 직원들에게도 이에 대한 보수교육을 시킴으로써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실버 산업이 늘어난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 모두 예측이었을 뿐이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즉 시장의 규모, 세그멘티드된 노인 고객집단의 크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단순한 노인전문가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복지의 개념이 아니며, 건강한 경제주체로서 니즈를 갖고 있는 고객의 개념으로 노인과 노인시장을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문 인력(웰 에이징 매니저)이 산업적으로도, 또 노인 자체에게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배출된 많은 전문인력이 기업을 포함한 사회전체에 노인들의 니즈를 잘 전달 함으로써 제대로 된 선 순환의 시장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배리어와 장애 및 핸디캡을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노인이 많아지면 사회적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웰 에이징 매니저가 실제로 활동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사진=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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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