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차례의 기고에서 주로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이야기해 보았다. 몸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춤을 중심으로 명상과 호흡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환경요인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발레는 무용수의 몸 동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음악, 조명, 무대장치를 포함한 치밀한 연출과 관객의 호응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작품을 매번 색다른 관점에서 구현한다. 최근에는 영상효과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무용수와 관객은 이런 ‘창조된 환경’에서 호흡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음악, 조명, 장치를 활용해서 하나의 환경을 창조하는 노력은 기업 마케팅에서도 활용된다. 이른바 ‘분위기학(atmospherics)’이라는 분야인데, 최근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이 단순한 제품 구매가 아닌 체험의 공간으로 정의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는 일찍이 건물구조나 내부 공간의 형태, 색상과 채광, 음향에 대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는데, 여기에 음악, 색상, 조명의 예술적 측면을 더해서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궁은 물론 세계 주요 유적들은 이런 공간예술의 대표적 성과들인데, 전기가 없던 시절 자연채광과 통풍을 살리면서 방호, 보안까지 당대의 전문지식이 총동원되었다고 한다.
분위기를 만드는 향기
최근에는 향기를 분위기 조성의 요소로 도입하고 있다. 건물 1층에 커피집을 두어 자연스럽게 커피향으로 안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쿠키의 달콤한 향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불교 사찰도 향(香)을 피워서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고대로부터 각종 제례에도 향과 초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야구단의 락커룸도 퀴퀴한 땀냄새와 곰팡내를 해결해서 상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여러 종류의 향기들은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후각을 통해서 사람의 감성에 영향을 준다. 패션 마케팅 분야에서는 바닐라 향이 여성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는 연구들이 있는데, 나이키는 독자적 실험을 통해서 꽃냄새와 감귤향이 스포츠 의류 매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한, 좁은 공간에서 숲 속을 연상시키는 피톤치드 향이나 바다 내음이 답답하고 짜증나는 마음을 달래 주는데 쓰고 있다. 숲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색조가 더해지면 더 효과적이다.
특정한 상황과 연결되는 냄새는 해당 체험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데,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체험이 무의식으로 형성되어 감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향기들이 갖는 효과도 어떻게 보면 바다, 숲, 디저트 같은 상황체험이 반영된 면도 있을 것이다. 발레를 한 사람들은 연습실 특유의 화장품 냄새가 섞인 땀냄새가 묘한 감정을 끌어낸 경험이 있다 여성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무용시간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빛과 소리, 학습된 체험
사람은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짓과 말로 세상 속에 자신을 만들어간다. 춤도 그렇다. 무대의 빛과 소리는 무용수의 오감을 통해 춤으로 만들어지고, 관객의 호흡과 감동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연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한 회의 공연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이 된다.) 무대 특유의 알싸한 먼지가 묻어나는 향기와 무용수들의 체취 역시 춤을 만드는 요소이다.
사람은 세상을 일정한 스토리로 이해한다. 어둠은 팽팽한 긴장감이나 불편한 공포감으로 인식되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 체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사회의 집단적 경험이나 그것이 축적된 문화가 작용한다. 이런 복합적 과정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분위기의 예술이라 생각한다.
어둡고 좁은 연습실에서 그룹으로 댄스 스포츠를 가르친 일이 있다.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수강생들에게 꽉 막힌 공간에서 거친 호흡을 함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필자는 과감하게 강한 보조조명을 사용하고 사운드 볼륨을 높여서 수강생들이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수업 전에 피톤치드를 사용해서 담백한 분위기를 만든 후에 명상으로 집중도를 높이고, 격렬한 연습 후 휴식과 마무리 명상을 할 때는 상큼한 과일 계열의 아로마 향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게 했다. 잔잔한 음악으로 흥분을 가라 앉히면서 잔잔하지만 웅혼한 종교음악을 사용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자연채광이 좋은 넓은 연습실을 쓸 때는 과감하게 수강생들이 자신들의 체취를 느끼며 열정적으로 감정을 발산하도록 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비누 향이 아름답던 10대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밝고 깨끗한 느낌에 맞는 음악으로 수강생들이 마음껏 흥을 돋우고 정리할 때는 눈을 감고 숲 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물소리 바람소리로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다.
10여년전 처음 댄스를 가르칠 때는 알맞은 음악을 구하기 어려웠고, 아로마와 같은 향에 대한 인식도 높지 않았다. (지하 연습실에 흔히 있는 페브리즈 방향제가 기억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분위기 조성에 도움되는 정보가 곳곳에 있고, 유튜브에는 관련 영상까지 같이 나오니 춤추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댄스 선생님이 춤 얘기는 안 한다는 반응이 있어 다음에는 춤의 구체적 동작과 흐름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필자: 김수진, 댄스 인스트럭터, 아그네스 인스티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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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객원칼럼니스트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