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몸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춤은 나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며 타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다. 춤을 추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막상 춤을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춤은 몸의 표현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민망하고, 특히나 스스로 몸매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더 그런듯하다.


춤을 잘 추던 사람들은 예전만 못한 자신의 춤과 몸을 보이기를 부끄러워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이글을 쓰는 필자도 전과 같지 않은 춤사위, 그 흐름을 받쳐주지 못하는 달라진 춤 선에 부끄러울 때가 있다.


<부끄러움 vs. 자연스러움>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겨루는 프로골프가 있다면, 동호인들의 즐거운 골프모임도 있다. 프로가 아닌 부족한 실력의 골퍼라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프로들의 골프를 보며 배울 점을 찾고 좋아하는 선수를 팬으로 좋아하는 것도 골프의 일부이고, 내 몸과 사정에 맞는 골프를 찾아가며 주변과 함께하는 것도 나의 골프이다.


춤도 마찬가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춤에 감동한다면, 동네 시장 떡집 아주머니가 애써 배운 라틴댄스도 존중할 일이다. 삶의 사연들 속에서 틈틈이 수련한 정성을 더하면 더욱 그렇다. 떡집 아주머니의 춤은 자연스러울 때 더 아름답다. 힘든 장사 일을 하면서 하루에 1시간 애써 수련한 춤이 프로 무용수의 춤과 같을 수는 없다. 나이가 다르고 몸이 다르니 더욱 그렇다. 떡집 아주머니의 춤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그녀의 정성이 와 닿기 때문이다. 억지로 꾸미고 무리하게 흉내내는 춤이라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고, 보기에 안쓰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하는 우리는 그녀의 삶의 뻐근함과 이를 헤쳐가며 수련한 그녀의 정성에 공감한다.


필자는 수강생들의 작은 발표가 있을 때 간단히 그들을 소개하고 준비한 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안쓰럽고 부끄러운 춤과 삶의 사연과 노력이 담긴 자연스러운 춤은 생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나름>


잘하고 못하고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한때 강속구 투수이던 무라타 죠지는 60이 넘은 나이에 시속 130Km가 넘는 공을 던진다. 이제 나이 들어 초라한 공일까, 그 나이에 대단한 공일까? 프로 춤 꾼이 아닌 사람의 몸과 동작이 완벽할 리가 없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유아기에 배변도 못 가린 일들을 부끄러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끄러움은 한 꺼풀만 벗겨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더구나 남들은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 갖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의 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프로의 춤과 다르다고 비웃는다면 그 사람이 춤을 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춤은 내가 좋아서 추지만 남에게 보여주며 함께하며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삶과 춤을 이해하지 못해서 불편하다면, 서로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요즘 동호인 모임은 서로 편한 범위에서 신상을 공개하고 함께하는 취미에 집중하는데, 불편함과 어색함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내 몸의 동작을 그대로 보여주는 춤은 더욱 이런 편한 모임이 중요하다.


필자는 춤을 가르칠 때 서로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 애쓴다. 이성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시간이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성별을 따로 나누지 않기도 한다. 간혹 다른 수강생 모임과 합반을 해서 경쟁과 단합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수련한 수강생들이 고급반에 모여 좀더 성숙한 춤공부를 할 때 제법 보람이 있다.


< 과감하게 솔직하게 >


부끄러움은 사실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때 생긴다. 남이 나의 춤과 몸을 초라하다고 혹은 음란하다고 생각할까 걱정하면 숨고 가리게 된다. 세상을 나 혼자 살 수는 없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이해할 수도 없으니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털어 버릴 수가 없다.


세계 최고의 무용수도 아무 곳에서나 춤을 추지 않고, 혹시 추더라도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에 맞추어 연출한다. 타인의 눈높이와 생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니까. 그러면, 더 터놓고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 아니거나 그럴 마음의 준비가 덜된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명문가’로 알려진 집의 며느리에게 라틴 댄스를 가르친 일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몸을 드러내고 춤추는 며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을 설득할 수 없어서 개인레슨 후 파티나 가면무도회를 열어 수강생 모두에게 닉네임을 쓰게 하고 헤어나 분장, 가면 등으로 밖에서 보면 알아보기 어렵게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도운 일이 있다. 춤 공부가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도 잘 나누어서 서로 편한만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숨고 가린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열고 대하는’ 지혜를 찾은 셈이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때와 아닐 때가 있다. 그 대상도 달라진다. 춤은 일상의 대화나 접촉보다 훨씬 솔직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부끄러운 일이라서 혹은 부족한 춤과 몸이라서 가리고 숨는 것이 아니라, 잘 준비해서 더 과감하고 솔직하기 위해 적절한 연출을 하는 것이다. 춤도, 노래도, 운동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



(필자: 김수진, 댄스 인스트럭터, 아그네스 인스티튜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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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객원칼럼니스트 다른기사보기